지난 24일에 방송된 KBS 2TV '셀럽병사의 비밀'에서는 전 세계 최초의 완판녀인 '오드리 헵번'에 대해서 방영이 되었다. 오드리 헵번스타일로 착장하고 나온 (여자) 아이들 멤버 미연은 정말 그녀처럼 보여서 몰입이 더 잘되기도 했다.
오드리 헵번은 벨기에 출신으로 어릴 적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부모님의 이혼 후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는 중립국이라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년 뒤 나치 독일이 네덜란드를 보란 듯이 침공했다.
오드리 헵번은 아버지처럼 따랐던 이모부가 저항 활동 혐의로 눈앞에서 총살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기도 했다. 이 당시 오드리 헵번의 나이가 열여섯 살이었고 신체 사이즈는 168cm인데 몸무게가 39kg였다.
이에 미연은 "밝은 공주처럼 보였는데 이런 인생을 살았을 줄은 몰랐다"며 그녀의 삶에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그녀의 건강을 해친 원인 중 하나인 흡연은 오드리 헵번이 엄청난 애연가여서 하루에 무려 3갑을 피울 정도로 담배를 피웠고 촬영을 할 때도 흡연을 해야 해서 종종 사라지는 오르리에게 촬영 감독은 그냥 피우라고 할 정도로 흡연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것이 그녀의 작품 속에 손에는 항상 담배가 들려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가 처음 담배를 피운 시기는 바로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해 아버지 같은 이모부가 총살당한 장면을 목격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나치 독일군은 네덜란드의 식량과 물자를 봉쇄하면서 네덜란드 국민들이 연료, 식량도 없는 혹독한 겨울을 보내도록 했다. 그래서 오드리 헵번 가족들은 살아남기 위해 독성을 있는 튤립 구근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할리우드를 떠난 오드리 헵번은 스위스의 작은 마을 '톨로체나스'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며 살았다. 두 아들조차 자신들의 엄마가 세계적인 스타였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알았던 그녀는 꾸준히 건강 검진도 받았고 집 앞 텃밭을 가꾸며 직접 수확한 유기농 식단으로 식사를 해왔다고 한다.
구독자 120만 명의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의 의사 겸 작가인 이낙준은 '암은 운명의 룰렛 돌리기'라고 설명했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면 원반 위의 '암'이 차지하는 면적을 줄일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좁은 면적에도 걸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유니세프 활동으로 소말리아에 봉사 활동을 다녀온 후 오드리 헵번은 악화된 증상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아프리카 봉사 활동을 자주 다녔던 그녀가 현지에서 아메바에 감염이 되었다고 검진 후 진단을 했고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약을 처방받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증상은 심해졌고 결국 LA 병원에 입원하게 된 오드리 헵번은 대장암 진단을 받고 3개월의 시한부를 선고받는다.
결장과 자궁까지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은 오드리 헵번의 뱃속은 점액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소위 '젤리벨리'라고도 불리는 '복막가성점액종'이라는 희귀 질병이다. 맹장 끝 충수에 생기는 점액성 종양이 터지면서 암세포가 복막에 퍼지고 장폐색과 복통을 호소하다 사망하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오드리 헵번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병상에서 스위스의 집을 떠올리며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보내고 싶다고 애원했다. 문제는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과 그녀의 몸 상태였다.
그러던 중에 의료 장비를 실은 항공기가 날아왔고 오드리의 오랜 친구인 디자이너 지방시의 전용기가 도착했다. 기장에게는 기압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한 고도를 낮춰달라고 요청하며 오드리 헵번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던 것이다.
스위스 그녀의 집에 도착한 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흰 블라우스 안으로 진통제를 맞으며 웃음을 한 번도 잃지 않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오드리 헵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도연은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최초의 세계적인 셀럽인 우리가 몰랐던 오드리 헵번의 죽음의 이야기와 영화 같은 인생에 대해 2024년 12월 24일 오후 8시 반에 방송되었다. OTT에서는 웨이브, 엘지 티브이, 공식 홈페이지에서 재방송 시청 가능하다.